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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스님

경허 선사 비판했다고 ‘불교평론’ 폐간 파문

by 有然(유연) 2022. 2. 5.

경허 선사 비판했다고 ‘불교평론’ 폐간 파문
황경상 기자
2012.09.25 21:11 입력

 
13년 된 불교계 대표 계간 학술지…발행 지원 중단 결정으로

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술지로 꼽혀 온 계간 ‘불교평론’이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선사(1849~1912·사진)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실렸다는 이유로 폐간이 결정됐다. 지난달 말 발간된 불교평론 52호(가을호)는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을 맞아 재야 불교학자인 윤창화씨(도서출판 민족사 대표)의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경허 선사는 깨달음에 매진했던 진정한 수행자”라면서도 깨달음 이후 음주식육과 여색도 서슴지 않았던 경허 선사의 모습이 “후학들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윤 대표는 경허 선사가 왜 그런 행적을 보였는지를 조명하는 한편, 경허 선사 스스로도 자신의 주색을 후회했다는 미공개 글을 발굴해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24일 “경허 선사의 인격을 매도하거나 가르침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경허 선사는 훌륭했으나 다만 그분의 음주식육과 여색이 후대의 많은 선승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색을 정당화·타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글이 실리자 경허 선사와 그의 제자인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어온 것으로 자부해 온 수덕사와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등이 수덕사를 사과방문하고 가을호 전량 수거를 약속했지만, ‘불교평론’ 발행을 지원하고 있는 신흥사와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지원 중단을 결정해 폐간에까지 이른 것이다.

홍 주간은 전화통화에서 “폐간 결정이 내려진 것은 사실”이라며 “21일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폐간 이후 후속대책에 대한 논의도 끝난 상태이며 폐간 결정은 이미 그전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자료 발견을 소개하고 의제를 설정하고자 논문을 실었는데 본의 아니게 경허 선사를 기리는 쪽에서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며 “이로 인해 폐간 결정까지 내려야 했던 선양회 쪽에도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 측은 “우리는 항의방문이라든지 성명서 발표 등 어떤 공식적 대응도 취한 바가 없다”며 “폐간 결정은 발행처의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999년 창간한 ‘불교평론’은 그동안 불교학과 인접학문의 교류를 촉진해 왔을뿐더러, 현재 불교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잡지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한불교진흥원이 주는 제9회 대원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잡지 폐간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다음달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학술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서기로 했던 동국대 김호성 교수는 저항의 표시로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 한 관계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응보다는 권위나 세력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폭력적인 관행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은 한 불교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미 불교평론은 재단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불교학계를 비롯한 전 불교계가 주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편집진과 그동안 글을 투고한 분들은 발행인에게 폐간을 만류하는 다양하고도 심층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의 불교 현실에서 불교학자들마저도 권력이나 문중, 이름 있는 승려나 집단의 눈치를 보고 순응한다면 불교의 미래는 너무나 참담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