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전수수 경지 보여준 경허선사 무심의 경지에서 나온 ‘무애행’
김종찬 기자 승인 2012.11.13 15:52 댓글 0
작은 방에서 도인나다
옹산스님 지음/ 혜미
“한 곳에 안주하실 때는 잡수시는 것은 겨우 접기(接氣)만 하시고 종일토록 문을 닫고 앉으셔서 침묵과언(沈默寡言)하셨으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혹 사람들이 큰 도시에 나가셔서 교화를 떨치시라고 권하면 곧 ‘나에게 한 가지 서원이 있으니 발이 경성 땅을 밟지 않는 것이다(吾有誓願足不踏京城之地)’하고 말씀했다.”
1990년대에 충남 서산 연암산의 천장암(天藏庵)에서 저자 옹산스님은 구한말 경허(鏡虛)선사의 수행담을 이렇게 요약했다. 경허선사가 천장암에서 깨달음을 시 한 편으로 지어 읊었다.
“세상과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봄 광명 없는 곳에는 꽃도 피지 않더라/ 만약 누가 성우(惺牛)의 일 묻는다면/ 석녀(石女)의 마음속에 겁을 밖의 노래라 하리라.”(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傍人若問惺牛事/ 石女心中劫外歌)
옹산스님은 이 게송을 “내마음 없는 곳에는 불법(佛法)도 없고 세상법(世上法)도 없어 내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고요하니 번다한 것”이라며 “본마음 하나 보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하고 닦아가는데 그 보고 싶은 봄광명을 봤다고 하면 거기에는 부처가 있을 수 없고 중생이 있을 수가 없다”고 풀이했다.
전 수덕사 주지 옹산스님 저술
경허선사 수행일화 다각 분석
저자는 이 게송의 수행처가 그토록 작은 방에서 나왔음에 주목한다. “사람하나 누우면 거의 맞는 아주 작은 방이었다. 태어나서 그처럼 작은 방은 처음 보았다. 그 작은 방을 보고 깨달았던 사실이 ‘방이 작아야 기운이 커지는 구나’라는 이치였다. 방이 너무 크면 기운이 빠져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본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집에서 큰 인물이 나온다.”
경허선사와 천장암은 깊은 인연고리가 있다. 벽에는 천장암에서 지은 선시 한 폭이 걸려 있다. “山自靑水自綠/ 淸風拂白雲歸/ 盡日遊盤石上/ 我捨世更何希(산은 절로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떨치니 흰 구름 돌아가네/ 종일토록 바위 위에 앉아서 노나/ 내 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랄 것인가)”
당시 천장암의 주지는 경허선사의 친형인 태허(太虛) 성원(性圓)스님이었다. 이곳은 경허선사의 ‘세 달’로 꼽히는 월면당 만공스님을 비롯해, 경허의 법통을 잇게 되는 수월스님과 천진도인(天眞道人)으로 명성을 떨쳤던 혜월(慧月)스님이 찾아와 밭일을 하며 수심결(修心訣)을 공부하던 수행처이다.
책은 경허선사의 제자 수월스님에 대해 상술한다. 법명 음관(音觀)인 수월스님은 출가를 천장암에서 했고 그곳에서 행자생활도 했다.
“수월은 스승 경허의 가르침을 받으며 종일 일하면서 죽기 살기로 천수대비주를 외웠다.… 나무를 하던 빨래를 하던 짚신을 삼든 그의 입에서는 <천수경>을 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구월심, 오매에도 불망하여 외고 다니는 천수경은 그에게 있어서 바로 화두요 공안이었다.
수월은 1887년 겨울 어느 날 골방으로 들어가 먹는 것,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천수경>을 외우는 정진을 감행했다. 이레째 되는 밤, 사하촌 사람들이 불기둥이 솟아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불을 끄러 달려 온 것이었다.
경허선사 진영.
절에 도착하여 수월스님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방광을 한 그는 세 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다.…이때 경허선사가 제자인 음관이 큰 소리로 <천수경>을 외더니 마침내 깨우쳐 부처를 이룬 것으로 여겨 천수경에 나오는 수월관음의 이름을 따 수월이란 법호를 내려준 것이었다.”
1904년 홀연히 주장자를 버리고 산문을 나온 경허선사는 북쪽으로 향해 1912년까지 함경도 갑산 도화동에서 유발 속복하고 ‘박난주’라는 이름으로 서당 훈장으로 아동의 문맹 깨워줬다.
옹산스님은 “이런 식의 회향은 파격이 아니라 몸소 입전수수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도인의 극처(極處)는 원래 비승비속의 경계라서 중과 속인의 경계가 없는 무엇이라 이름할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는 것으로 작첩(作妾)이나 이재(理財) 추구가 아니고 순수한 회향이므로 선지가 더욱 빛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동아시아 선종사에서 경허와 같이 말년에 자취를 감추는 회향은 ‘깨달은 바’를 중생과 더불어 나누는 깨침의 실천행으로써 범인들이 흉내 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면서 “경허선사의 무애행은 확철대오한 무심 경지에서 나오는 것”이라 규정하고, “경허의 교화 지역을 추정해 보면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란 점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 옹산스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경허의 수많은 일화 중 나녀(癩女)와의 동숙에서 가장 뜨거운 감명을 받았다. 정말 나의 스승을 만났다는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초인적인 너무나 초인적인 이 일화 속에 경허의 깨침과 닦음, 대해탈과 대자유 그리고 중생제도의 사상이 온전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허 대선사는 수행이 힘들어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 무언의 채찍을 내려주신 그래서 늘 우러르며 그리워하는 나의 초인(超人)이다.”
해인사에서 돌아올 때 혹한 속 동사(凍死) 직전의 나녀(癩女) 동침 일화를 분석한 저자 옹산스님의 책은 “근세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구도의 불꽃이 튀었던 역사의 현장이 단숨에 100년이란 시공(時空)을 초월해 도인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장좌불와하던 작은 방 원성문(圓成門) 염궁문(念弓門)이라 쓴 친필 휘호가 전설 속으로 걸어간 초인을 일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옹산스님은 저서 <산중(山中)산책>과 논문집 <선(禪)의 현대적 의의와 그 생활>을 냈고,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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