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鏡虛 선사 (1846.08.24/음~1912.04.25/음) 열반송
心月孤圓(심월고원) : 마음달이 뚜렷이 원만하니
光呑萬像(광탄만상) : 광명이 만상을 삼키도다.
光境俱忘(광경구망) : 광명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즉
復是何物(부시하물) :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경허는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대선사이다. 18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고, 속가의 이름은 송동욱宋東旭이고,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다.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1879년 11월 15일, 동학사 밑에 살고 있던 진사인, 이 처사의 한 마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 이 한마디를 전해 듣고는 바로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1대 조사인 인도의 마하가섭존자 이래 75대 조사이다. 콧구멍 없는 소는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 대사의 어록에 실려 있는 선어다. 당시 경허의 시봉을 받들던 사미승 원규는 경허의 사제인 학명 도일의 제자였고, 이 처사는 사미승 원규의 속가 아버지였다.
1886년 6년 동안의 보임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에 나섰다.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돌며 불법전파와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사경에 다다른 한국불교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월과 혜월, 만공과 한암 등 한국불교를 떠받친 거목을 키워냈다. 이렇게 불법진흥에 힘쓰던 그는 1904년7월15일에 만공에게 전법게를 준 후에 천장암을 떠났다. 그후에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라고 개명하였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 웅이방 도하동에서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 저서에는 <경허집>이 있다.
**혜월(慧月, 1861~1937), 수월(水月, 1855~1928), 만공(滿空, 1871~1946), 한암(漢岩, 1876~1951)
오도송悟道頌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홀연히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퍼뜩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六月燕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6월 연암산 아래의 길에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일없는 야인이 태평가를 부르네.
'경허 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허 선사 비판했다고 ‘불교평론’ 폐간 파문 (0) | 2022.02.05 |
---|---|
경허 선사 열반송 임종게 (0) | 2022.02.05 |
경허선사 수행일화 다각 분석 - 옹산 스님 (0) | 2022.02.05 |
경허 스님 행장기 - 생애와 사상 (0) | 2022.02.05 |
청운 스님 - 이뭣고 수행법 (0) | 2022.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