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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에테르 에너지와 진동 주파수 - 신유가 영혼의 치유사 다스칼로스

by 有然(유연) 2022. 1. 22.



◆ 신유가(神癒家)란 영혼의 치유사로서, 초월적인 능력으로 병을 치유하는 사람, 예컨대 다스칼로스 같은 사람을 말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의 저자인 키리아코스 C. 마르키데스는 이를 어떻게 보는지 제1권 12장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나는 카티나 부인의 경우를 통해서 내가 관찰한 것이 현재의 과학이론의 테두리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카티나 부인의 경우는 나에게는 예외적인 것이었다. 단숨에 극적으로 나아 버린 상황뿐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수중에 그녀의 병력 기록과 엑스선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장 지독한 회의론과도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물이었다.



다스칼로스가 짧은 기도를 드린 다음 강의를 시작했다.

모든 병은 심령 – 이지적 상황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욕망과 생각이 마음속에 근심과 좌절, 분노, 고집, 증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병적인 감정의 파동을 일으킬 정도가 되면 우리 몸속의 에테르 생명력은 소모됩니다.



사람이 적당한 영양섭취와 호흡과 삶의 방식으로 충분한 양의 에테르 생명력을 얻는다면 그의 인격은 완전한 건강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오라는 주위로 널리 방사되고 종종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흡수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의 탐구자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이웃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진리의 탐구자들은 자신의 오라가 깨끗하고 밝게 빛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은 그들에게서 에테르의 생명력이 넘치도록 뿜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것은 이 에테르의 생명력이며,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사실은 생명력을 주는 에테르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테르의 생명력은 육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심령체와 이지체를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합니다.



나에게는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생각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시술에 들어가지요. 그러나 진리의 탐구자는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의 모든 생각은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말이 아닙니다. 말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합니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봉사하려는 각오와 행위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탐구자로서 매일 밤 몇 분씩 앉아서 자아분석을 하기로 약속한다면 이것이 본질적으로 기도의 한 형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자아분석이 자학적인 쾌감이나 죄의식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진리의 탐구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인격으로서 그러한 인생의 조화로운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절망과 환상의 혼돈에 빠져 있는 고통스러운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신유가로서의 우리의 작업은 에테르 복체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령–이지 차원의 고통까지 덜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많은 신유가들은 자신이 하루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사랑이 있다면, 많은 사람을 도와줄수록 여러분은 더욱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서 확언합니다.



투시능력자는 사람의 오라를 보고 어느 부위에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유의 모든 과정은 성령과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주 계획의 매개자가 될 뿐입니다. 성공은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낫지 않는 것보다는 낫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낫지 않는다면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카르마의 응보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병이 낫고 안 낫고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신유가로서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언제나 자신의 에테르 에너지를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돕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만으로도 치유의 염체가 절로 만들어져서 환자의 오라에 남아 있게 됩니다.



(회의론자들은, 신유란 환자가 시술자를 믿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며 낫는다는 것도 실은 강력한 자기암시, 혹은 최면의 결과라고 할 텐데요? 당신은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들의 말도 어느 정도는 옳습니다. 자기암시와 최면은 종종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됩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도 치료가 가능할까요?)

그렇습니다. 그의 잠재의식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신유의 에너지가 자신의 오라를 침투하지 못하도록 주위에 염체의 장벽을 둘러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정적인 염체가 치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유능한 신유가가 되려면 에테르 복체의 여러 가지 성질에 대해서 통달해 있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부러진 척추를 고치자면 에테르의 여러 가지 성질에 대해서 숙지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인체해부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경우에 신념만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란 아마도 며칠 동안 통증을 없애 주는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병을 맹목적인 신념만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에테르의 생명력을 운용하는 방법과 척추의 구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으면 등뼈를 제자리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에테르의 복제성을 이용해서 환자의 몸 안에 두 개의 에테르 손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러니까 네 개의 손이 작업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내 육신의 손과 환자의 몸 안에 있는 에테르 손 말입니다.



에테르 에너지는 동시에 작용하는 4가지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스칼로스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것은 운동, 감각, 복제, 창조의 성질이다.

① 운동의 성질이란 혈액순환, 심장의 박동, 허파의 운동, 사지운동, 신진대사 등등의 운동을 가능케 하는 성질을 말한다.

② 감각의 성질이란 감각경험과 느낌, 정서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에테르의 성질을 의미한다.

③ 복제의 성질은 이지계의 형상을 만드는 것, 즉 생각 자체, 그리고 텔레파시나 염력이동 현상, 그리고 유체이탈 등을 가능케 해준다.

④ 창조적인 성질이란 육체를 이루거나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성질을 말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당분간 에테르의 창조적인 성질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것은 성령이 직접적으로 감독하고 통제하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에테르의 감각, 운동, 복제의 성질에 대해서 우선 숙달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 성질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하고 살아 있는 시각형상을 만드는 것을 연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신성한 염체를 만들어내는 순간 그것에는 저절로 로고스와 성령의 영역에 속한 것인 에테르의 창조적 성질이 충전될 것입니다. 앞으로 보름간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고 에테르의 눈으로 오른손에 테니스공만한 크기의 눈부시게 흰 빛을 내는 공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에테르의 복제성을 실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손 안에서 느껴 보세요. 그것은 살아 진동하는 빛입니다. 이것이 에테르의 감지성을 숙달시키는 연습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것은 원격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생각–욕망의 염체입니다.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 광구를 그에게 보내어 그의 몸 전체를 감싸게 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에테르의 운동성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염체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이 치료에서 발휘하는 가치도 더욱 커집니다. 성령은 자동적으로 이 광구를 창조의 에너지로 채워줍니다.』



색깔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에테르의 파동만 존재할 뿐이지요.

예컨대 내가 이 색을 빨강색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눈이 이 주파수의 파동의 자극을 받아들여 뇌의 한 부분에 전달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 다음에 자아의식을 지닌 현재인격이 그 자극을 빨강색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와 동일한 파동을 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정확히 빨강색의 느낌을 일으킵니다. 물질의 형성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주파수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특정한 색깔에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타적인 사랑의 감정과 백분홍빛의 느낌을 주는 파동이 일치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만일 백분홍빛의 색감을 지닌 파동이 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지를 물어온다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대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덧붙여야겠군요. 어떤 사람을 평온하게 해줄 수 있는 색깔이 다른 사람에게는 반대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백분홍빛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파동의 종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서 실제적인 효과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어떤 색깔을 투사해야 할지 확실치 않을 때는 간단히 흰 광구를 보내십시오. 진동하는 백색광은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빈혈증인 경우에는 백분홍빛이나 오렌지 색깔을 마음속으로 방사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빨간색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빨간색은 초조와 혼동과 절망감을 일으키거든요.

고혈압인 사람에게 빨간색을 보내서도 안 됩니다. 검붉은색은 특수한 경우에만 소량이 허용될 뿐입니다.

암의 경우에는 보라색 광구를 만들어 종양의 중심부에다 놓아둡니다.



다스칼로스는 강의를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명상수행과 자아분석을 매일 체계적으로 해 나가라고 당부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모든 이기심의 잔재를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