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대명(代壽代命)
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다른 사람이 대신 죽음으로써 나의 수명이 연장되는 경우를 ‘代壽代命’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원래 불교 종파가운데서도 밀교(密敎) 용어였다. 밀교는 비밀스런 신통력을 구사하는 종파이다. 그 밀교중에서도 좌도밀교(左道密敎)가 있다. 우도(右道) 밀교가 보편적인 방법이라면 좌도는 파격적인 방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도는 엄격한 금욕을 강조한다. 좌도는 섹스까지도 깨달음의 방편으로 동원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예를 들면 탄트라이다. 좌도밀교에서 구사하는 하나의 노선이다. 좌도에서 구사하는 탄트라의 행법 가운데는 해골 방법도 있다. 남녀가 수십번의 성적인 교합을 하면서 남자의 정액을 해골 바가지에다 계속해서 바르는 행법이 있다. 물론 죽은 자의 해골을 구해다가 옆에 놓고 섹스를 하는 것이다. 정액을 해골에 덕지 덕지 바르다 보면 그 해골이 파워를 지니게 된다. 생기를 불어 넣는 셈이다. 정액을 입힌 해골은 그 어떤 영적인 파워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골 탄트라 행법은 일본 밀교에서 수백년동안 전통이 이어 왔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내용을 적은 기록이 있는데, 모두 빨간 띠로 봉인을 해놓고 외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중국, 한국 보다도 불교의 비밀스런 전통이 잘 보존된 나라가 일본이라는 점도 주목 해야 한다. 일본에서 영발이 가장 쎄다고 알려진 고야산(高野山)의 밀교 사찰에 가보면 한국에서는 모두 사라진 밀교의 의식이 아직 살아서 작동되고 있다. ‘대수대명’도 이러한 밀교적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나 불교적 색채는 사라지고 그 사례만이 전해진다. 한국에서 이어진 대수대명의 사례를 소개하면 이렇다.
부산에 한 사업가 부부가 있었다. 아들이 둘 있었는데, 20대 중반의 작은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가끔 불교 사찰에 가서 예불도 드릴 정도의 불교적 교양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부인이 어느날 꿈을 꾸니까 미국에 가 있는 아들이 몸에다가 칼을 맞는 꿈을 꾸었다. 꿈이라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불길하게 여겨지는 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까 남편도 아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는게 아닌가. 부부는 깜짝 놀랐다. 아울러 겁이 덜컥 났다. 이건 개꿈이 아니로구나. 어떻게 부부가 동시에 흉몽을 꾼단 말인가. 이런 일에는 와이프가 더 적극적이기 마련이다.
이 흉몽을 ‘땜빵’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비상시에는 땜빵해줄 사람을 알거나 수소문 하는 것도 인생의 지혜이다. 수소문하다 보니까 팔공산의 중봉(中峰) 선생을 알게 되었다. 중봉은 전생에 밀교의 고승이었다. 타고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터득한 비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연을 접한 중봉은 그 부부의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였다. 여기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강력한 염력을 쏘아 보내는 것이다. 일반인은 집중력이 약해서 염력을 쏘아 봤자 별 볼일이 없다. 그러나 평소에 정신 집중력 수련을 거친 중봉 같은 도사가 기도를 하면 그 전파가 고출력이 된다. 밀교에서 유래한 대수대명의 주문이 따로 있다. 이 주문을 외우면서 염력을 쏘니까 그 사업가 와이프의 꿈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아들이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려고 하는데 신발이 작아서 신발을 신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었다.
“불교의 큰 사찰을 찾아가서 스님들에게 신발을 여러 컬레 시주를 하시오”. 이게 처방이었다. 가지고 있는 재물을 풀어 버리면 운을 바꿀수 있다. 재물이라는 것도 너무 과중하면 그 사람에게 커다란 영적 짐으로 작용한다. 이때는 돈을 풀어버리면 짐이 가벼워진다. 이 이치를 알기도 어렵다. 그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와이프는 신발 100여 컬레를 사다가 큰 절에다가 시주를 하였다. 스님들 신으라고. 그리고 나서 며칠후에 집안 사람이 죽었다. 남편의 누나. 즉 아들의 고모가 되는 할머니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그 고모의 나이는 74-5세 무렵. 건강도 좋고 성성했었는데 갑자기 죽은 것이다. 요즘에 70대 중반은 많은 나이가 아니라고 본다. 아직 죽을때가 아닌데 갑자기 죽어 버렸다. 그러나 이 죽음을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70대 중반이니까 죽을 수도 있지. 사업가 부부 쪽에서는 고모의 죽음을 그냥 특별히 주목하지 않고 대수롭게 넘겼다.
문제는 중봉에게 나타났다. 중봉의 꿈에 그 죽은 고모가 나타났던 것이다. 꿈에 나와서 하소연을 했다. ‘아직 내가 죽을때가 아닌데 왜 이렇게 먼저 보내 버리느냐. 좀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명이 짧은 조카. 즉 남동생의 아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땜방 용으로 고모가 먼저 간 셈이다. 유전자가 같은 패밀리는 업보(業報)도 공동 계산되는 수가 있다. 공동계산이란 쉽게 말하면 연좌제이다. 조카의 수명을 연장했으니까 그 고모의 수명을 단축시켜야만 패밀리 전체의 토탈 수명 대차대조표가 맞는 것이 된다. 이런 사례가 ‘대수대명’의 한 사례이다. 남의 집안 대수대명 공사에 참여한 중봉은 또 어떤 인연으로 이 일에 개입한 것인가? 중봉 선생이 이 일을 겪고 난 후에 필자에게 한 말이 있다. ‘남의 집안 일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헌